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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에 담겨 있는 것들이 너무 무거울 때면..
(그리고 마음 속에는 늘 무거운 것들이 담겨있다)
왠지 바다에 가서 털어버려야겠다는, 바다에 가면
털어버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90년.. 부산에서 제주로 배를 타고 홀로 건넜던 밤바다에도
입대하기 전.. 반드시 그래야만 할 것 같아 찾아 갔던
동해의 낯선 바다(“낯선” 바다가 존재하는지?)에도
언제 어디서 찾았는지 더 이상 기억도 나지 않는
수많은 바다들에 나는
무언가를 털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바다 앞에 서면
모든 것을 잊고 말아서
무엇을 털어놓고 싶었는지, 대체 털어놓고 싶기는 했던건지
대체 내가 이곳에 왜 왔으며, 어떻게 왔는지
내가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 모두
까맣게 잊고 말아서 늘
아무 것도 털어놓지 못한 채 돌아서게 된다.
시선조차 닿지 않을 만큼 멀리 있는 수평선과
무시무시한 깊이를 태연하게 암시하는 검은 물빛
영겁의 세월이란 무엇인지 알려주는 끝없는 파도..
의 조용하고 깊은 인상 속에서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돌아서게 된다.
여전히 마음 속에 무언가를 가득 담은 채
그러나 뭐라 설명할 길 없는 막연한 위안을 받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