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이지 않아요
들을 수도 없답니다
어디에 있는지 알지도 못하죠 그저
이쪽도 저쪽도 내 자리가 아닌 문턱에 서서
멍하니 차가운
하늘만 바라보고 있네요..
…
…
지독한 악몽을 꿨다.
더 이상 꿈 속에 머물기 싫어 억지로 일어나야만 하는,
일어났을 때 얼굴이 시린 느낌과 함께
오한과도 비슷한 전율을 느끼는게 되는
그런 종류의 악몽이었다.
나의 악몽들이 대체로 그러하듯 지난 밤의 꿈도
처음에는 평화롭게(?) – 사실은 꽤 재미있었다 – 시작되었고,
누군가에게 쫒기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공포스런 꿈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포는 쫒기고 있다는 사실보다는
쫒는 자, 누군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강력하고 잔인한 자의
존재 자체로부터 생겨났으며,
그로부터 완전히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로 인해
극적으로 고조되었다.
그런데..
어제의 악몽은 평소의 악몽들과는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던 탓이었는지..
어느 순간부터 나는 꿈을 꾸는 ‘나’를 인식하고 있었고, 동시에
꿈의 상징들을 해석하고, 이해하고, 또 수긍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종류의 이성도 역시 꿈의 일부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지난 밤 꿈 속에서의 이성적 판단 역시 꿈의 일부였을 가능성이
농후해보이지만, 그 결론만큼은 지금 생각해도 지극히 타당하다.)
게다가 꿈 속의 나는 나를 쫒는 공포스러운 존재에 대해
전에 경험(?)해 본 적 없는 적극적인 자세로 대처했는데…
그 자의 잘려진 머리를 프라이팬(!)에 올려놓고,
(누가, 어떻게 그 머리를 잘랐는지는 알 수가 없다..)
여전히 살아서 잔인하게 웃고 있는 그 얼굴에 불을 붙임으로써
추적의 영원함을, 따라서 공포의 근원을 파괴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때까지 점점 정도를 더해가던 공포는 그 순간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점에 도달해 버렸고,
그와 동시에 나는 잘린 머리에 불을 붙인 인물이 ‘나’인지,
아니면 프라이팬 위에서 불타고 있는 머리가 ‘나’인지 알 수 없는
기이한 혼란 속에 빠져버렸다!
…
기껏해야 해석과 이해를 통해 공포를 극복하려 하는,
하지만 결국에는 악몽의 압도적인 파도에
휩쓸려버리고 마는 꿈 속의 이성처럼..
현실 속의 이성도 때때로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나의 이성이 거대한 감정의 바다 위에 떠있는
작디 작은 조각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프로이트적 의미의) 자아를 담고 있는 조각배는
자아가 물 속에 빠져 질식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피난처를 제공해주지만
거대한 파도가 일 때는,
사실은 조금만 커다란 파도가 일어도..
전혀 쓸모가 없어진다.
이성의 작은 배에 앉아
출렁거리는 파도에 떠밀려 다니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
이성의 작은 배에 갇혀
삼킬듯 덤비는 파도와 바다를 바라보며 느끼는
소외감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가!
‘나’는 조각배와 위협적인 거친 바다 양쪽에
동시에 존재하며, 선택은 불가하다는 것.
꿈 속 공포의 실체는 어쩌면 이것이었는지도 모른다..
…
…
나는 길을 잘 잃는다.
걸어다닐 때에도, 운전을 할 때에도..
– 그리고.. 새롭게 알게 된 것이지만..
자전거를 타고 다닐 때에도 그렇다.
워낙에 길을 잘 잃다보니..
애초에 길을 제대로 확인하려는 노력도
점점 더 하지 않게 되고..
길을 잃어도 별로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는다.
그래도 이렇게 저렇게 헤매고 다니다보면..
–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는 몰라도
결국 목적지에 도착하게는 되기
때문이다.
가장 먼 기억은..
버스나 전철로 사는 동네를 떠나는 것이 굉장히
드문 일이었던 중학교 때였던 것 같다..
기껏해야 교보문고를 찾아가거나
극장을 가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갈 때마다 늘 헤맸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역시 종로와 을지로의
관계를 파악하는 일이었는데..
몇번 다녀본 이후로
종로 안에서 목적지를 찾거나
을지로 안에서 목적지를 찾는 것은
비교적 수월한 일이 되었지만..
종로에서 을지로로 가거나..
을지로에서 종로로 가는 일은
언제나 커다란 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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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도 길을 잃는다.
잘 아는 곳이지만..
아는 길로만 다니는 버릇 때문에
(이 역시 길을 잘 잃는 탓에 생긴 버릇인 듯..
어쨌거나 길을 잃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다..)
여전히 새로운 길들이 많고..
또 길들 사이의 연관성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변명 같지만.. 베를린 Mitte의 경우
길이 똑바로 흘러가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쉽게 길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어떻게 왔는지, 어디로 다시 나가야하는지
알지못하는 곳에서.. 나무 한 그루를 발견한다.
Innenhof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린..
부드러운 빛의 인상적인 배경 속에
서 있는 나무를 한 동안 바라보다..
몇 장의 사진에 담아놓고 돌아나선다..
인넨호프를 빠져나오니
또 전혀 새로운 길이다..
피식.. 웃고 만다..
길이야 어쨌든 다시 찾게 될테니..
이런 식으로 우연히 무언가 인상적진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도 멋진 일이 아닌가..
라고 생각을 하다가..
마음 한켠에서 꿈틀거리는
초조함을 발견하고 흠칫..
놀란다
나이를 먹어가기 때문이다..
라고 쉽게 생각해 버리고 잊어버리지만..
사실은 영영 길을 잃고 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나의 마음에 옅은 그림자를
넓게 드리우고 있기 때문인 것을
알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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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행복해지기 위해 푸른 꽃을 찾았다.
하루도,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바라고, 동경하며
푸른 꽃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그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푸른 꽃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한달이 지나고, 일년이 지나고,
십년, 이십년이 지나자
사내는 지치고 희망을 잃었다.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절망의 싹이 움트는 모습이 분명하게 보였다.
“푸른 꽃은 없다. 내가 찾아보지 않은 곳이
어디이며, 내가 들춰보지 않은 돌멩이가
한 개라도 있는가. 푸른 꽃은 없다.
모든 것을 다 경험해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내는 절망의 병에 걸린 지친 마음을 이끌고
여전히 푸른 꽃을 찾아 헤맸다. 평생을 동경해온
행복을 포기할 수도 없었고, 지나온 삶을
부정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혹시 자신이 찾아보지 않은 어느
작은 구석에 푸른 꽃이 실제로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라기보다는 억지 바람이
그의 상처투성이 발을 앞으로 이끄는
힘이기도 했다..
사내는 불행했다.
…
어느 날 낯선 산에서 차가운 밤을 맞게된 사내는
한 때 금을 캐는 광산이었던 어떤 동굴 안에서
쉴 곳을 찾았다.
동굴 안의 한 구석에 책상과 의자가 놓여있었고
책상 위에 양초와 성냥이 있었다.
사내는 성냥을 들어 양초에 불을 붙였다.
양초의 따스한 불빛이 동굴 안에 퍼지자
책상 아래에 떨어져 있던, 알 수 없는 문자로 쓰여진
낡은 노트 한권이 눈에 띄였다.
사내는 의자에 앉아 노트의 문자를 해독해보려
애를 쓰다가 그만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고 말았다.
그만큼 지쳐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사내는 멀고 먼 나라의 낯선 도시에서
우연히 푸른 꽃을 찾았다.
푸른 꽃은 그러나 새로운 것이 아니었으니,
그가 오래 전부터 너무나 잘 알고 있던 꽃이었다.
단지 그 꽃이 자신이 찾고 있던 푸른 꽃이라는 사실을
낯선 도시에서야 비로소 깨달은 것 뿐이었다.
사내는 기뻐했고, 눈물을 흘렸으며,
그것이 행복의 눈물임을 알았다.
사내는 일찌기 그러한 기쁨을 느껴본 적 없었으며,
일찌기 그러한 행복의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었다.
세상은 이제 조화로웠고, 자신은 너무도 분명하게
조화의 일부였다. 그는 푸른 꽃에 입을 맞추고
조심스럽게 가슴에 안았다. 푸른 꽃은
그의 품 안에서 형용하기 어려운
찬란한 푸른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사내의 얼굴에 짙은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으니, 이 모든 행복이 그저 꿈일 뿐이라는
쓰라린 사실을 어렴풋이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쓰라림은 사내를 붙잡아
거친 힘으로 꿈 속에서 끌어냈다.
꿈에서 깬 사내는 행복의 여운과
쓰라린 상실감 사이에서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른 채 오랫동안
그대로 업드려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그의 눈에서
평생을 참아온 서러움의 눈물이
끊임 없이 흘러 내렸다.
…
사내는 더 이상 푸른 꽃을 찾지 않았다.
더 이상 행복을 찾지 않았다.
꿈 속에서 맛본 행복이, 그로 인해
무한히 커진 현실 속의 절망이
그의 모든 힘을 앗아갔기 때문이었다.
그 날 이후로 푸른 꽃을 찾던 사내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
어느날 갑자기 가슴이
터억..
막혀 앞으로 나서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감은 눈을 뜨지도
뜬 눈을 감지도
못하겠거든잊고자 했던
그래서 잊었던
기억이
보지않고자 했던
그래서 볼 수 없었던
아픔이눈 먼 코끼리처럼
어두운 허공을 떠돌다
터억..
네 가슴을 들이받은줄 알아라..제대로 들이받치면
살아남지 못할줄 알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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